'개념의 숲'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8.11  개념의 숲



개념의 숲

저자
고은 지음
출판사
신원문화사 | 2009-0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민족시인 고은이 풀어낸 세상 개념에 대한 단상록과 철학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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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8 - 08





개념은 발전한다. 개념은 본질을 포착한다. 개념은 비본질도 포착한다.

개념은 모든 현상 속에서 모호해진다.

확실한 낙조가 흐리멍덩한 어둠으로 변하는 것처럼.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



은사의 교육보다 더 위에 있는 친구와의 나눔이 진리다.



혼.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육체이다. 그러나 부상당한 육체이다.



소유에의 장님. 헌신에의 장님. 이 두 장님만이 사랑을 완성한다.



히말라야 빙벽 혹은 아이거 북벽의 얼음이 녹을 때를 위하여 배를 만들어라.

그러기 전에 북풍을 기다리는 열매들이 있다.

제 가지에서 떨어지기 위하여.



정체성 identity 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고 복합적이고 혼혈적이기까지 하다.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 사이 언제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있다.



근대 인간은 개인을 발견했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개인의 한계를 발견했다.



정의는 힘인가. 아니, 정의는 가장 힘 있는 꿈인가.



자유에는 시인이 필요 없다. 자유를 위해서 싸운 적이 없는 인간에게는 일상이 없다.



다수는 투표에 의해서만 살아난다. 다수는 봉기에서만 살아난다.

그러고는 다시 잠든다.

잠을 깨어도 어제와 오늘이 일관되지 않는다.



세계 각 지역에 보낼 아주 귀중한 선물은 동양화의 여백이다.

여백의 정신이 서구 문명 또는 서구 예술의 어떤 난치병을 치유할 때가 올 것을 믿는다.



수학. 가장 오래된 철학.



가 버린 세계를 현재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 시간의 우정이다.

기억은. 그러나 기억은 거의 틀린 기억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서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김구



짐승들의 존엄. 미생물들의 존엄과 함께 인간의 존엄이 성립된다.

인간만의 존엄은 사악하다. 왜냐하면 존엄은 다른 존엄에의 동지이기 때문이다.



유행은 달라지고 싶은 자들의 체제다.



자연의 힘은 어느 힘보다 강하다.



동양은 서구에 대해 주체적일 것. 그러나 동양은 동양 자신을 가혹하게 성찰할 것.



정치는 투쟁이다. 정치를 통해서 세계는 경기장 또는 도박장이 된다.



늙은 여행자의 경험은 세계 각처의 젊은이에게 꿈꾸게 한다.



4월 남풍이 분다. 보리가 충실하게 익어 간다.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 있다.

먼 길과 술집 그리고 영화가 끝난 직후의 하얀 스크린의 묵언.



진리는 굳세지 않다. 부드러워라. 부드러워라.



혁명은 성공하자마자 혁명이 아니다. 호치민과 게바라는 그 때문에 혁명가이다.



지혜는 후회다.



감정. 인간을 인간적이게 하는 힘이다. 인간을 생명적이게 하는 힘이다 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



진정한 예술은 꿈의 예술이기보다 힘의 예술이다.

진정한 정치는 힘의 정치기보다 꿈의 정치다.

문과 무가 형제화되는 나라가 힘의 나라다.



너무 많이 미래에 내맡겼구나.

미지의 미래야말로 얼마나 나를 도취하게 하고 얼마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는가.



조화. 세계를 존속시키는 음악.



정상에 올라왔다. 정상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허가 있다. 얼마나 찬란한 공허인가.



역사란 자연의 일부.



저 수렵시대 조상들의 활시위에서 나는 소리로 하여금 활의 현악기를 만들어낸 원시의 영감은 무척이나 놀랍다.

그 누가 사냥도구인 활줄에서 현의 가락이 나올 줄 알았겠는가.



생명의 존엄은 반드시 생명의 길이와 별개이다.



그런 흐릿한 하늘 속에 낮달 한 조각이 떠 있다.

누가 일부러 찾아내지 않으면 보일 까닭이 없는 그런 존재감으로 그것은 가만이 떠있다.

무엇이 저렇게 저 자신을 사라져 버릴 넋처럼 남길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나를 내세울 줄 모르는 삶의 무명성은 실로 희귀하고 존귀스럽기까지 하다.

낮달 한 조각 아래에서 나는 나 자신의 이론으로 부터 얼마나 구애받지 않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그 3개월간 사방 30cm, 깊이 50여cm의 상자 안에서

뻗어 내린 뿌리 길이를 환산해보니 무려 1만 1,200km나 되었다. 거짓말 같았다.



옛 유교의 규범에 '신독'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일 터.

이런 경지에 마치지 못할지라도,

많은 눈과 입이 있는 사회의 한복판에서라도 자신에게 자그마한 품위를 보태는 몸짓이나마 얼마나 소중한가.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는 5월의 꽃을 데려온다고 한다.

아니겠다. 온난화는 제주도 유채꽃을 한 달이나 일찍 데려왔다.



어쨌거나, 내 조상의 반도에 봄이 오고 봄의 꽃이 온다.

와서는 꽃대궐과 꽃마을을 이루어준 뒤 미련없이 북으로 북으로 가 저 압록강 중강진에 닿는다.

가장 늦은 진달래로 그 곳 손님이 되는 것이다.



가을이면 봄의 꽃 소식을 거슬러 단풍이 온다.

저 두만강 헐벗은 무산 언저리로부터, 아니 백두산 밑 삼지연 숲으로부터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기어이 내장산 단풍의 천하명품을 만들어낸다.



역사는 혼자가 아니다. 이 역사에 대하여 그 누구나 역사가가 아닌 자 없으리라.

시골의 할머니와 토인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역사가이다

하나는 구어로 역사를 살고 하나는 문자언어로 역사를 사는 차이뿐이다.



낭만을 낮은 것으로 폄훼하지 말 것.

낭만주의를 행여 자연주의, 사실주의, 현실주의의 저쪽에 내버려진 허망으로 내치지 말 것.

아니 고전주의가 유골 섬기기라면 낭만주의는 자신의 사막에 꽃밭을 들여오는 것.



해가 진다. 해가 뜬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허구이다.



잡초는 농민의 상징이면서 농업의 저주이다. 모순이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제일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이것.

해가 진다. 해가 뜬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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