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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에서 나오는 선한 영향력뿐이라고 믿는다.
작년 봄에 전에 다니던 병원 이사장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었다. 장례식장은 지금 사는 곳과 좀 떨어져있어서 막차를 타고 돌아와야해서 20분도 채 앉아있지 못했다. 사정은 그러했지만 안갈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장례식장에서도 다시 돌아오는 중에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받은 것만 기억이 나고 해드린 것이 하나 없는게 너무 죄송했다.
처음에 만난 것은 기차역이었다. 병원 면접을 아침 9시에 보기로 했는데 사는 곳과 너무 떨어져서 처음 가보는 낯선곳에서 숙소를 잡아 자야했다. 그런 나의 사정을 이사장님 댁에서 같이 지내시던 목사님이 얘기하셔서 면접 전날 이사장님댁에서 자게 되었다. 이사장님댁 근처의 기차역으로 마중 오셨는데 기차역 안까지 들어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처음 뵈었는데 연세가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으신 할아버지셨다. 데리러 오신 것도 감사한데 역 안까지 들어와 기다리고 계신 모습에 나는 조금 감동했었다. 그렇게 이사장님댁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사모님이 이사장님 자리를 식탁의 왕자리에 차려놓았으나 이사장님은 자리를 옮기셔서 맞은편에 앉으시더니 많이 먹으라고 하시면서 내 접시에 갈치 구이와 맛있는 반찬들을 올려주셨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안마 해드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방에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오래된 가구들과 싱글침대가 하나 있었다.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그래도 병원 이사장님인데.. 가구들이 오래되고 여기 저기서 모아온 것처럼 아이들의 낙서가 그대로 있었고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졌다. 침대도 너무나 소박해서 침대에 누워계신 이사장님의 나이가 더 와닿고 가냘퍼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소박한 방이라니. 나는 어른들한테 애교도 없고 살갑게 대하는 편이 아니라서 팔다리를 안마해드리고 금방 나왔다. 그게 내가 이사장님께 해드린 전부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때 더 살갑게 애교도 부리고 안마도 더 잘해드리려 노력했을텐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거 밖에 없었다. 내가 해드린게.
다음날 아침은 토스트에 요거트를 먹었다. 이사장님은 신세대 음식들도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뭔가 귀여우셨다.ㅎㅎㅎㅎ 아침도 많이 먹으라고 더 얹어주고 가셨다. 그리고 아침(이라고 쓰고 새벽이라 읽는다) 이사장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엄청난 안개속을 달렸다. 그때는 몰랐다. 서산은 안개의 도시라는 것을. 처음보는 안개에 신기해하며 두리번 거리니 병원에 도착했다. 면접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사장님 방에서 기다리는데 내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신문에 내 이름을 여러번 쓰셨다. 우연히 만난 면접 안내 선생님께 얘는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데리러 와달라고까지 부탁하셨다. 그리고 면접을 보고 왔는데 계속 전화하시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시더니 합격 했다고 많이 기뻐해주셨다!!! 그리고 서울에 가기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고 하던 나에게 방을 내주시려 하고 또 정장이 담긴 옷과 신발의 짐은 놀때 방해되니까 여기 두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버스 타고 가면서 먹으라면서 캘로그 시리얼바까지 여러개 챙겨주셨다. 그후로 몇번 더 집에 놀러오라고 하셨는데 어른을 어려워했던 나는 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치다 마주칠 때 인사를 드렸는데 나를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쓰다보니 구구절절 쓰게 됐는데 내가 놀라웠던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자기 집에 데려와 먹이고 재워주신 것.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할아버지처럼 편하게 대해주신 것.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로 보여주신 것. 귀가 잘 안 들리시는데도 묻고 들어주신 것.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해주신 것 등. 나는 대화 몇번하지 않은 이사장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사장님의 순수하고 소박하고 자상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서.
월급을 받으면 꼭 캘로그 시리얼바를 사드려야지 다짐 했었는데 한번도 사드리지 못했다. 은혜갚지 못한 까치.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조건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지.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삶을 사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야지. #장래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