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에 해당하는 글들

  1. 2016.06.14  화요일
  2. 2016.05.24  책: 언제들어도좋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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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작은 티끌이 내 하루를 망치지 못하도록
오늘도 씩씩하게 보내시길.
#이석원 #이석원블로그
출처 http://blog.naver.com/dear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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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님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글이 좋다

​​



지나온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굳이 복습하지 않고
다가올 빛나는 순간들을 애써 점치지 않으며
그저 오늘을 삽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이내 지하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왜 내가 자릴 피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껄끄러운 상황이 생기는 건 싫었다. 이미 내 마음은 껄끄러워진 뒤였지만.




인연은 기적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하는 편





마음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 피어나는 것.

누군가 물을 주면
이윽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그렇게 뿌리내려 가는 것.





이 여자는 김정희여야 한다. 나는 그녀가 그렇다고 해주길 바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단발머리에 눈은 홑꺼풀인 데다 휘지도, 흉터나 큰 점이 있지도 않은 종아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
혹 정말 김정희라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일단은 김정희여야 산이든 강이든 넘을 것이었다.
......
하여, 애초 소개팅 자체의 성사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던 내가 어째서 이 여자가 김정희이기를 이토록 바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김정희라면, 솔직히 나는 결혼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이 여자는 무조건 김정희여야 했고 아니라면 지금 바로 개명을 해서라도 무조건 김정희여야 했다.






한 오분을 더 그러고 앉아 있는데 뒤편 마루에 앉은 커플들로부터 하하 호호 웃음꽃이 만발하더니 사랑해 쪽쪽 난리가 났다. 내가 장담하지만 너네 올해 벚꽃 피기 전에 헤어진다.




왜 중요한 약속만 잡히면 얼굴에 뭐가 나냐구?
내일이 소개팅인데 자기 전에 떡볶이 먹고 빵 먹고
그런 이쁜 짓을 하니깐 뭐가 나지.





그녀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그래서 듣기 싫었던 말은
'여자라서 그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심지어 사랑까지도
그 사람 고유의 판단과 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의 하나로 해석되거나
혹은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치부될 때

다시 말해
'그건 그 애라서 그래'가 아니라
어려서 그래.
여자라 그렇지 뭐.
와 같은 말들이 존재를 외롭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왜 그렇게 힘이 들까.






그렇게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면서 저의 행동은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렇듯.






인생은 단순해요. 우리 머리속이 복잡할 뿐이지.





늘 그렇듯, 답이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답이겠지요.







너무 아쉬워 마.
모든 것에 여전히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안부
"소리 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된다.
하여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영원의 조각들.
그 아름다운 조각들을 너와 함께 새기려는 게 그리 큰 욕심일까.







그러나 나는 지금 평소처럼 눈곱만 뗀 채 친한 친구를 만나러 나와 있는 상황이고, 남은 시간은 고작 세 시간 십오분뿐이니 이를 어쩐다. 급히 여주인에게 종이와 펜을 빌려 분 단위로 쪼개가며 계획을 세웠다(그렇다. 문자를 받는 순간 찻집 주인과의 일들은 내게서 완전히 사소해져 버리고 말았다).









나영이가 주책 맞게 찻집 여주인과 나에 대해 헛소리를 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누군가 내게 관심을 보이고 나와 만나길 원하고 내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이런 상황을 겪어본 지가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나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 때면
슬프다. 그게 소중한 사람일 땐 더더욱.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우산을 쓰고도 몸이 반쯤 젖어
짜증 섞인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이제 막 내려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와하하
비를 맞으며 즐거워한다.

그래.
즐거운 사람들은 뭘 해도 즐거운 법이지.

사실은 비가 성가셨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흐린 탓은 아니었을까.






"나 얼굴이 점점 못생겨지는 거 같애."
"너 원래 못생겼어."






운명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내 경험에 의하면 가치란 건 사랑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더라.
하기 전에 고려된다면 그것은 조건이 될 뿐.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처럼
가치란 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얘기다.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 둘만의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원래부터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주고
다른 사람은 해주지 못하는 이해를 해줌으로써
오직 내게만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가치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그때 그 사람

"아, 저 사람.
내가 저래서 좋아했었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홀로 기억할 때
그 순간은 나만의 것이 된다.






앞일이야 어떻게 되건 간에, 이 여자는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다. 이렇게, 서로의 무릎이 닿을만큼 가까이에.







새로운 인연이 내게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면
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결정되지 않는 삶
어려서는 별 대가 없이도 넘치도록 주어지던 설렘과 기대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져보기 힘든 이유는 모두 결정되어버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벌 수 있는 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 등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정해져 버린다. 장차 여행은 몇 나라나 더 가볼 수 있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으며 내 힘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가 점점 계산 가능한 수치로 뚜렷해지는 것이다. 남은 생이 보인다고 할까. 허나 아무리 어른의 삶이 그런 것이라고는 해도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채로 몇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고 생각하기에 나는 노력하기로 했다. 너무 빨리 결정지어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은 생에서도 한두 번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기길 바라며 살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막 눈을 떴을 때 또다시 맞을 하루가 버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명학에서는 '돌 석' 자가
이름에 들어가면 안 좋다고 하는데
뭐 그래도 그냥 저냥 잘 살아왔잖아요.
앞으로도 사람들 산책길에 깔린 돌담처럼 그렇게
내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케이크가 맛있는 신사동 어느 카페에서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이
"저, 발레 하셨죠?" 하고 물어서 순간 당황한 이유는
그날 내가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단지 발렛 파킹을 했냐고 물어본 것뿐인데
난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연애를 할 때
정말 좋은 상대는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이 관계에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지
알 수 있지요.








경계
(지금) 모해요? 까지도 괜찮지.
시간이 되냐는 뜻일 수 있으니깤
그치만 (오늘) 모했어요? 로 넘어가면 곤란해.
친구 사이에 물어볼 말은 아니니까.






첫눈이 온다며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삶이 끝나 버린 건 아니야.
그저 인생의 수천여 가지 행복 중 하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일 뿐.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게 한 번 뿐이기 때문.

사랑도 고통도
하늘도 꿈도 바람도.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고
가르쳐 줄 수도 없으며
가르치려 든다면 오히려 웃길 듯한
하여
결국엔 스스로 터득할 수밖엔 없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 보는 법.
자기 자신과 가능한 불화 없이 함께 잘 살아가는 법.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끔찍하단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당연한 듯 여겨진다면
그게 바로 진짜 평생 해도 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일을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사랑은 이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이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소설을 읽을 때 뚜렷한 이야기나 재미 없이도 글이, 즉 문체가 마음에 들면 몇 날 며칠이고 읽어 내려갈 수 있듯, 누군가의 목소리나 말투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별나게 재밌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비슷한 이치이다. 이미 내용과는 상관없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목소리와 말투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별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교보에 들어서니 연말이라 그런지 서점 안도 방금 타고 온 지하철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서점 안도 방금 타고 온 지하철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자를 보라. 공간을 새카맣게 메운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떤 여자가, 그것도 그토록 미워하고 서운해 하던 사람이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그 눈엔 그 사람만 보이기라도 하는 양 한 번에 알아보는 이 광경을.

아, 내 사랑.







한 번 부탁해서 되지 않는 건
두 번 하지 않아요.
나를 구차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할 일은 부탁이 아니라
다만 판단을 내리는 것뿐.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만큼에 대해.

관심과 성의란 부탁을 해서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처음 갔어도 그리움을 자아내는 곳을 좋아하고
추억이 많은 곳을 다시 찾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교또를 좋아해요.

이런 나의 고백을 듣게 되는 사람은
아마 그래서, 당신과 그곳에 같이 가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테지만

이젠 소용없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보이는 것이 전부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라.

이 간단한 법칙을 실천하지 못해 멀고도 고통스러운 길을 돌아가는 사람들은 불행히도 언제나 더 좋아하는 쪽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생각과 결정에 불을 지핀 건 현실이었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못한 현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 그럼에도 내게 관심 없는 사람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미련하고도 엄중한 현실.
현실.





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내게 '안녕'을 고할 수 있는
이 오묘한 삶의 아이러니.








당신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당신이 내게
거스름돈을 주려
주머니 속에 놓은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늘 외로웠다.
내가 얼마를 주었든
그것은 대가 없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길
바래 그리했던 것인데
당신은
딱 이만큼만 받겠노라
선을 그어놓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오버되면
그건 모두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아
씁쓸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주려 했던 것이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상처에 집중하는 사람 중
나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어야만 할까.








기억나니.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게 알려준 것도 너였지.

너는 그렇게 사려 깊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너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배려는
너무도 적었구나.










어렵게 얻은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너를 헝클어 놨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고 살아가리라 결심했지만
상처란 건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선생님, 저는 글을 쓰고요, 가끔 노래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제가 이런 사람이라고 선생님에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건물 앞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정말로 이것이 내 일이다, 확신이 드는 일이 생겼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너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었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를. 그래서 미루고 미뤘는데.












의미
예를 들어
고양이를 기르는 남친의 집에 갔다가
옷에 묻혀온 털을 자신의 집과 차 등지에서 발견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연인이 기르는 동물의 부속물이
내 사적인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서로의 삶과 생활이 겹쳐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여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
내 집 내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령 그가 집에 가방을 두고 갔다든가)
새삼스레 낯선 느낌과 함께
묘한 애틋함이 들기도하는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누군가에게 애착을 갖게 되면
그가 쓰는 물건까지도
남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평범 이상의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건
평소 무심하고 무의미했던 수많은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조차-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유한하기에, 드문 일이기에 더더욱.









잘 가.
언제 들어도 슬픈 말.











우리는
서로를 가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단지 좋아하려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만나요.
그러니 누구도
누구의 것이 될 필요는 없는 거죠.

하여
나는 끝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그건
내가 당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이치와도
같은 거니까요.

아, 너를 네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일이
바로 너를 갖는 길이라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1월 2일. 또다시 눈이 왔다. 발목까지 찬 눈밭을 서걱서걱 밟으며 나는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갔다.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는 여전히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러다가 뻔히 아무 신호도 울리지 않은 휴대폰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너의 말대로 나는 누군가를 간절히 좋아하게 된 대가로 이렇게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걸 알았기에 너는 나에게 너를 좋아하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던 것일까.












이제 세상 사람들은 옛날처럼 영원한 사랑을 기대하진 않지만
인생에는 아직도 비밀이 많아.
그리고 그건 슬프지만 분명 비극은 아니야.

복 많이 받길.









수없이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며
다시 한 해을 보냈습니다.
누군가는 여한 없이 원망하다가
결국엔
나를 돌아보는 것으로,
내가 받은 것보다
준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이 해의 끝을 보내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고 또 바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행복
행복해서 삶이 소중한 게 아니라
삶이 소중한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행복했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엔 이제야말로 뭔가를 써야 할 때. 과연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 바로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것. 해 보면 알게 될 것을 왜 물어볼까. '필사를 하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나요?' 같은 질문에 내가 결코 대답을 해주지 않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묻지 않고 바로 시작을 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썼다. 쓸모가 있든 없든, 똑같은 글이 되풀이되고, 한심한 글밖엔 나오지 않았어도 종일 펜을 놀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그 무엇도 아닌 글이라 해도 그저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이제 정말로 글을 마치려 한다. 그 전에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나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꿈이나 목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 없이도 지난 사십년간 충분히 잘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건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요, 찾아진다 해도 언젠가 시들해질 수 있으며, 또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을 뿐.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뭐해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마음속 평화가 오래도록 함께하시길.








난 오늘 그런 친구를 보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알았다. 먼 곳까지 조문을 하러 온 친구의 일견 당연해 보이는 행동을 그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세상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 투성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돌아오는 주에 신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파주로 날아가 사과와 축하을 함께 듬뿍 해드려야겠다. 혹여 나의 불찰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해도, 속 좁은 나와 달리 신부가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도 너그러이 이해했다 해도, 내가 당신과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꼭 표현해야 겠다.

인연은 우연이 아닌 성의와 표현의 산물이니까.








'서울에 새 눈이 내리고,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의 연장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걸어갈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하신 고 천경자 화백이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하신 말씀이다. 위대한 예술가도 결국 그가 추구했고 그를 살게 했던 건 새 눈과 꽃과 소박한 삶과 늙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이었나보다. 작고, 소박하고, 항상 우리 곁에 있어주는 것들.





"너가 나를 떠나버려서 내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지경이었는데 그걸 너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야."

그러니 내 인생은 내가 지켜야지. 진짜 연애는 누군가 와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초대하는 거니까.









지금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 해도 막상 이루고 보면 별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틈틈이 해주는 게 좋다. 감정을 생활의 동력으로 이끌되 그 속에 매몰되지는 않는 것.










저는 항상 제가 하는 이야기가 두 겹이 되길 원합니다. 연애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삶의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 등으로 확장되길 원하지요. 제 이야기를 하는 듯해도, 실은 읽는 독자의 이야기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감 같은 것 없이도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글을 써 왔고, 그것이 앞으로도 쭉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이번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쓰는 과정에서 발견한 저의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일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을 다할 생각이지만 그리 거창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이제 제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기 때문에 하는 노력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은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요.









바라건대, 모든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삶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결정되지 않은 채로 지속되길.







2016년 5월 24일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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