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단편소설'에 해당하는 글들

  1. 2016.05.04  책: 한국 대표 단편 소설

그 날 예배는 아주 젬병이었디요. 웬일인지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성이 나서 강대만 향하여 앞으로 바라보고 앉았고, 이전 모양으로 가끔 나를 내려다보고 웃은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저씨를 보려고 남자석을 바라다보아도 아저씨는 한 번도 바라다보아 주지도 않고 성이 나서 앉아 있고,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공연히 꽉꽉 잡아당기시지요. 왜 모두들 그리 성이 났는지...... 나는 그만 으아 하고 한번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앉아 있는 고로 울고 싶은 것을 아주 억지로 참았답니다.




이튿날 유치원을 파하고 집으로 오게 된 때, 나는 갑자기 어제 벽장 속에 숨었다가 어머니를 몹시 울게 했던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어쩐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좀 기쁘게 해 드려야 할 텐데...... 무엇을 갖다 드리문 기뻐할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문득 유치원 안의 선생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꽃병 생각이 났습니다. 그 꽃병에는, 나는 이름도 모르나 곱고 빨간 꽃이 꽂히어 있었습니다. 그 꽃은 개나리도 아니고 진달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꽃은 나도 잘 알고 또 그런 꽃은 벌써 피었다가 져 버린 후였습니다. 무슨 서양꽃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꽃을 사랑하는 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꽃을 갖다가 드리면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려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당나귀가 더 날뛰었다. 당나귀가 더 날뛸수록 아이의, 왜 쥑엔! 왜 쥑엔! 하는 지름 소리가 더 커 갔다.
그러다가 아이는 문득 골목 밖에서 누이의, 데런! 하는 부르짖음을 들은 거로 착각하면서, 일부러 당나귀 등에서 떨러져 굴렀다. 이번에는 어느 쪽 다리도 삐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그제야 눈물이 괴었다.
어므 새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괸 아이의 눈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별 - 황순원






"너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점순이와 나
동백꽃 - 김유정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 - 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으로 요 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 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뼈다귀가 움츠러드나 보다 하고 내가 넌지시 그 물을 대신 길어다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 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 줍소서.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리지요."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고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큼 그저 툽툼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몽톡한 것이 내 눈에는 하릴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 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이 아니냐. 한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끔 가다 몸이 - 장인님은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 -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다 깨박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 쫑알거린다. 그동안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에 대고 혼자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야무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발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사실 이 때만큼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도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봄봄 - 김유정








진수가 돌아오는데 고등어나 한 손 사 가지고 가야 될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장날은 아니었으나, 고깃전에는 없는 고기가 없었다. 이것을 살까 하년 저것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사러 가면 또 그 옆의 것이 먹음직해 보이는 것이었다. 한참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고등어 한 손이었다. 그것을 달랑달랑 들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데, 겨드랑 밑이 간질간질해 왔다. 그러나 한 쪽밖에 없는 손에 고등어를 들었으니 참 딱했다. 어깻쭉지를 연신 위아래로 움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
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너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만다.
"......"
진수는 퍽 난처해하면서 못 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만도는 등어라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
했다.
수난이대 - 하근찬





"선생님, 노래를 불러 주세요. 마지막 소원...... 노래를 해 주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여는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렀다. 여의 입에서는 창가가 흘러 나왔다.
여는 고즈넉이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고즈넉이 부르는 여의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숭엄한 코러스는 울리어 나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벌 한편 구석에서는 밥버러지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엄숙하게 울리었다. 그 가툰데 익호의 몸은 점점 식어 갔다.

붉은 산 - 김동인




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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