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하는 글들

  1. 2017.09.26  책: 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2. 2017.08.19  책: 시옷의 세계 - 김소연 4
  3. 2016.10.21  세이노의 가르침

행복을 향한 몸짓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여행 말고 또 있을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이 말은 뻔하다. 굳이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갑자기 문장은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햇살이 스며든다. 공기의 질감까지 부드러워진다.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오후 다섯 시의 그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한낮 차가운 와인을 마신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낯선 골목이 노래로 가득 차기도 하고, 낯선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기도 한다. 유난히 작았던 숙소가 문득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바람에 고립되었던 그 아찔했단 순간은 인생의 모험으로 포장된다. 폭포 앞에 서는 사람도, 골목 끝에 서는 사람도, 끝없는 시골길 위에 서는 사람도 일을 것이다. 지나간 연인의 얼굴이 겹쳐지는 사람도 있고, 유독 높았던 웃음소리가 덧입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저마다의 여행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빛나기 시작한다. 좀처럼 바래지 않는 빛들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그 모든 여행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는데 우리는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다. 나의 파리와 너의 파리는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나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빛은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취향이, 애써 외면했던 게으름이, 떨칠 수 없는 모범생적인 습관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또 어지간한 것들은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리는 단순함이 여행의 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못 견디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위해서는 다른 모든 걸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위해서는 다른 모든 걸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등등 여행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 여행이 내게 나를 말해주었다.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 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능 것을 어띠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 윌리엄 서머셋 모옴, 달과 6펜스




내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결단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거나, 혹은 결단을 늘 행동으로 옮기고야 마는 성공 수기들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빨래를 널다 들어와서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브라질 오지를 탐험하면서 수첩에 이 글을 끄적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요일 오후에 겨우 빨래를 널고, 다음 날 출근을 괴로워하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고, 어설픈 확신 따위에 인생을 거는 치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나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에 인생을 송두리째 걸 수 있는 인간형이 아니므로. 스물한 살이 아니라 서른일곱 살쯤이 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그 정도는 알게 된다. 동시에 결국 이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매일을 살아가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도 고향은 없다는 것을.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못났든,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들려주는 말들을 사랑한다. 그게 거짓투성이여도 상관없다.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당신을, 나는 당신이라고 부르려 한다. 당신이 들려주는 말들을 당신의 진심이라고 여기려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내가 함께 믿고 싶기 때문이다. - 김소연, 시옷의 세계







나는 여행객. 너의 보석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길 사람. 그 보석이 이 도시에서 가장 빛난 보석이라고 믿어버릴 사람. 김거이 믿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나의 이름은 여행객. What's your favorite로 너의 진심을 알고 싶은 사람. What's your favorite에서 슬며시 드러나는 너의 진심에 내 여행 전부를 걸고 있는 사람. 무모한 사람. 아직도 진심을 믿는 순진한 사람. 나의 이름은 여행객.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젹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 존 버거, A가 X에게






"난 내일의 진리를 말하지."
"난 오늘의 과오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해가 이곳에도
뜨고
진다.

나는 넋을 잃고
풍경 저 끝네서 이 끝까지
카메라을 들고 뛰어다닌다.
마치 해 지는 걸 처음 본 사람처럼.

그곳과 이곳은 다른 해가 아닌데
그곳과 이곳에서의 내가 너무나도 달라
해도 달도 별도 다르게만 보인다.








살아오면서 그런 유의 행복을 종종 맛본 적이 있다. 여행 끝에 마시는 한 잔의 물. 소박한 은신처,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남모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따뜻하고 소모되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낯선 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가 길의 끝에서 낯선 이가 나타날 때, 인간을 발견한 그 마음은 기쁨으로 설렌다. 그리하여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지극히 환대한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중해 기행






좋은 걸 보고 흥분할 때, 옆에서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았다. 미술관에서는 서로가 발견한 것들을 나누며, 각자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합쳤다. 혼자 여행할 땐 '아, 이걸 그가 보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수없이 생각했는데, 같이 여행하니 그런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그냥 지금 같이 보며, 같이 좋아하면 된다는 건 참으로 간단한 행복 공식이었다.








함께한 7년의 여행이 준 선물 같았다. 아니, 명백한 선물이었다. 여행에서의 남편이 바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한참 버스을 찾으러 뛰어다닐 때 남편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그 전에는 얌전히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 자기도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남편은 다음 여행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 다녀온 곳을 이야기하면서 또 가고 싶다고 줄기차게 말하는 사람,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도시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변수 앞에서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이. 나의 무능한 여행 짝꿍이. 더 이상은 결코 무능하다 말할 수 없는 여행 짝꿍이 된 것이다.





"저기가 유명하대"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누가 그래?"라고 물었다. "블로그에서 봤어"라고 대답했더니 남편은 "그 사람이 이 도시의 모든 식당을 다 가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잖아. 난 남들이 어딜 가는지, 뭘 먹는지에는 관심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새로운 여행의 문은 또 열렸다. 어떤 여행 정보도 없는 남편에겐,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것이다. 목적지는 언제든지 변경가능한 것이다. 순간순간의 우리만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의 여행을 바꾸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여행을 바꾸고 있었다.





오래 기다려
천천히 먹는다.
서로 이야기하고 웃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은
맛있는 시간이다.

문득, 이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한다.
천천히.
음미하며.
같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같이.

여행이 내게
일상의 리듬을 가르친다.





아직 물러가지 않은 어둠과 이제 막 당도한 빛이 어우러지는 풍경 앞에서 나는 어느 순간 소리 지르는 것도 멈췄다. 이 자연 앞에서는 경건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오전에는 포토밭에서 일해.
농장이 얼마만 하냐면 팔만 헥타르야. 매우매우매우 커.
그리고 오후에는 나무을 깎아. 취미야.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어이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오랫동안 머뭇거리며 바라보'는 것

비행기 안에서 나는
한참이나 이 구절을 곱씹었다.






그 모든 젊음엔 박수가 필요하니까.
그 모든 용기엔 팬이 필요하니까.







그들은 시간이 많아 시간에 휘둘리지 않았다.
한 곳에 일주일 이상 머무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6개월의 여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작은 가방을 들고.
"우리는 늙어서 빨리 못 움직여. 그러니까 천천히 여행하는 거야.
가방도 마찬가지야. 늙어서 무거운 걸 많이 들 수가 없어.
오래 여행하려면 가벼워져야 해."

그날 밤, 나는 여행 가방을 뒤져서 엽서 한 장을 꺼냈다.
그들처럼 늙고 싶다고. 그렇게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하고 싶다고.
나의 꿈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끝까지 무사한 여행이 되길 빈다고 썼다.

다음 날, 그 엽서 한 장이 노부부를 울려버렸다.
새빨개진 눈으로 눈물을 닦으며 그들은 엽서를 가방에 넣었다.
"너를 보면, 너의 남자친구도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거야.
나중에 꼭 우리처럼 오래오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정말로 좋은 여행이 될 거야.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나에겐 평생 기억하고 싶은 칭찬이 있다.
평생을 노력해 현실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매일 더 부지런한 동네 여행자가 되자고 마음을 먹는다.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니까. 멀리 여행을 떠나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은 결국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니까. 그 마음가짐으로 내 고향을 여행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내 고향은 망원동이니까. 내가 내 고향의 가장 충실한 여행자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모든 요일의 여행은
다시 시작이다.



2017년 9월 26일 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시인. 아무도 내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집 읽는 걸 지독하게 좋아하다가, 순도 100퍼센트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했던 도서관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쁜 걸음들 속에서 혼자 정지한 듯한 시간이 좋다. 혼자가 아닌 곳에서 혼자가 되기 위하여, 어디론가 외출하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곳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보다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놓는다. 소망을 자주 만나기 위해서 내겐 심심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심심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심함이 윤기나는 고독이 되어갈 때 나는 씩씩해진다. 조금 더 심심해지고 조금 더 씩씩해지기 위하여, 오직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실내에서 바깥을 빼꼼히 내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금세 사라지고 말 것들에 렌즈를 들이대며, 금세 사라지고 말 것들을 언제고 이렇게 부지런히 기록해두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난여름은 일본의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보냈다. 석회암 돌계단과 돌담이 푸른 이끼를 두른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 석회암은 원래 산호의 시체였다. 바닷속에 살던 산호 숲이 땅의 융기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와 석회암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은 과학이었지만, 이걸 과학하게 해준 것은 육지 위에 널려 있던 산호의 시체였다.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어떤 증거는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상상력을 작동하게 하고, 그래서 과학 없이도 이미 과학이 되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지난여름, 오랜 세기 전의 바닷속을 나는 산책했다. 티베트의 남초 호수에서 짠맛을 느끼며, 오랜 세기 전의 바닷속에 서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히말라야의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이 충돌했던 엄청난 광음을 만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준 증표들을 통해서 우리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용기를 얻는다. 시간을 거슬러서 연결 불가능한 것을 연결하는 용기를 얻는 것이 곧 상상력인 셈이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드는날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꽃






버스가 기울 때마다 비스듬히 어깨에 닿곤 하는 기척을 이처럼 사랑해도 될는지 #유희경 #민






침묵은 무엇을 지키는 데에 쓰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행사하는 데에도 쓰인다. 침묵은 경청과 묵살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포함한다. 침묵이라는 것은 내가 행할 때는 가장 신중한 방패지만, 타자가 행할 때는 가장 뾰족한 창일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방배처럼 나를 보호해주지만, 너의 침묵은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를 수 있다. 나는 말보다는 침묵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우선 말해볼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러므로 실은 우리를 위해서, 매사에, 빈번이, 계속해서.




타인에겐 무심과 배포의 소산인 듯 보이겠지만, 실은 무뚝뚝함은 소심과 서투름의 결합이다.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손해을 부풀릴 수 있는 결함 중의 결함이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세심한 배려와 살가운 표현에 능숙한 성격이 나는 언제나 부럽다. 좋은 마음을 전하려 어어, 하는 사이에 기회는 물 건너가고,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아무 표현도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기가 일쑤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을 그래서 시에다 적고는 한다.





실패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목격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를 읽는다. #시옷의세계 #김소연







이것은 그저 소풍처럼 소소한 일상일 뿐이었다. 서로 다른 출발지에서 서로 다른 이유들로 모여든, 수천 명의 소풍 행렬. 장소를 찾아가는 소풍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가는 소풍. 우리가 찾아가는 그 사람, 김진숙은 누구일까. 우리는 그 사람을 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우리가 우리에게 가는 길이다. 내쫓기어 공중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는 사람, 그에게서 우리는 우리를 본다. #시옷의세계 #김소연





비프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영도 다리 진입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 우리는 행진을 했다. 경찰이 강경하게 길을 막고 물대포를 쏘아댔다. 우리는 뒤로 돌아 다급히 뛰었다. 내가 도망치는 사이에, 맨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 도망치며 친구를 챙기려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그 순간,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모두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며 흥겹던 얼굴들. 삽시간에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는 이 두려움의 얼굴이 우리의 본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공포와 두려움, 이게 우리 삶의 진짜 얼굴임을 그때 나는 보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을 나눈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각자의 두려움을 서로 보여준 사이가 되었다. 그런 사이끼리는 맨 처음 이유가 다를지라도, 같은 희망을 공유하게 된다. 그 희망은 희망을 희망할 권리였다.
다시 비프광장으로 돌아와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렸을 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잠든 모습게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둡고 싸늘한 새벽녘. 나란히 잠든 사람들, 깨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 광장이 그냥 그대로 집이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식구와 같았다. 그곳이 어디든, 두려움의 맨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던 사이. 그게 내 개인의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이. #시옷의세계 #김소연







지금 여기, 우리가 하필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이유는 변한다. 세밀해지고 증식된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희망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아니었다. 달리다 보면 희망이 실리기 때문에 희망버스였다. 김진숙을 못 보고 돌아왔지만 소풍은 좋았다. 하나의 이유가 너무 많은 이유를 만나고 돌아왔다. 빈 도시락을 들고 갔다가 꽉 찬 도시락을 챙겨 들고 돌아온 소풍이었다.








허우적거림은 나의 자세를 헝클고 공기를 헝클지만,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하고 공기를 고여 있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허우적허우적하는 표현들을 가장 따뜻하게 받아주는 우리의 마지막 장소는 어쩌면 시의 장소일 거예요. 그러므로 시의 장소에서는 질서를 꿈꾸지 말아야죠. 허우적거려야죠. 혼돈을 혼돈으로, 불안을 불안으로, 공포를 공포로 말해야죠. 그렇게 해도 되는 마지막 장소니까요.





사람에게 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천만에. 사람에게 말은 업보였다. 말은 빚어지은 동시에 깨졌다. 그게 사람의 운명이고, 사람인 한 그 멍에를 짊어지고 고해의 언덕을 힘겹게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사람에게 말이라는 것은 쓸모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 그 자체로 이미 트라우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말과 사물의 간격, 말과 사람의 간격 속에서 길을 잃는다.





안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밥그릇을 빼앗겨 내몰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람들의 소식이 귓전에 들려오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안녕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괴물은 아직 되지 않은 사람이다.



아,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 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
- 송경동, 꿈꾸는 자 잡혀간다





감옥이 어디인지, 이제는 문학만이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좌절의 몽롱함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악착같은 힘으로.






비는 별조차 뽀득뽀득 닦아놓았다.




솔방울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모양 좋은 낙엽이 떨어져 있을 때에는 허리를 굽혀 줍는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떨어져 나뒹구는 무심한 사물 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 무늬를 지녔는지, 나는 늘 감탄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는 꿈이 아니라 심심함의 세계이다. 심심함을 견디기 위한 기술이 많아질수록 잃어가는 것이 많아진다. 심심함은 물리치거나 견디는 게 아니다. 환대하거나 누려야 하는 것이다.







한 시대의 여물인 고통과 한 시대의 신발인 절망감, 한 시대의 비행과 한 시대의 불감증을 한 시대의 길가에서 우리는 사랑의 편지를 주웠지만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 우리는 어쩌면 이미 사망했다.





영원히 사춘기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종이비행기처럼 접어 날리고 잠 속으로 도망쳤다.





행복 같은 게 저 멀리 있는 듯하여 부지런히 그쪽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피로함. 저쪽으로 달려가다 매번 넘어져버리는 삶. 넘어져, 흰 셔츠 호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버찌, 양손 가득 소중하게 들고 있던 토마토가 뭉개져버리는. 이번 가을은 호주머니가 비어 있었으면 한다. 양손 모두 허전한 채로 비어 있었으면 한다. 달려갈 곳도 없이 그냥 텅 비었으면 한다.







오늘 우리는 야외로 나와, 길고 널찍한 경사지에 선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햇빛 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나는 좀처럼 바다로 내려오지 않지만, 오늘 이곳
평화로운 등을 가진 큼직한 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쳐 여기에 와 있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느린 음악






시인으로 산다는 비참은 방식이 좀 다르다. 먹고사는게 비참해서 더 큰 비참을 외면하는 삶이 아니라, 더 큰 비참의 참담함 때문에 먹고사는 비참을 외면하게 되는 삶.




우리 눈은 지는 해와 뜨는 해을 보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매혹적인 색을 착시해낸다. 산란하는 모든 것을 향한 우리의 황홀한 착시 때문에 우리는 늘, 불가피하게 빛의 모퉁이를 돌아서 집으로 간다.



길을 걸으며 이야기할 때가 좋다. 땅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그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와 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는 사실을 그림자를 통해서 알 수 있으니까.






꿈이 사라진 자리에서 계획만 세우고 산다고.






네 눈에 비친 나를 나는 내 자신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 네 눈에 비친 내가 되려고 어쩌면 여태껏 살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오래된 친구는 오래 묵은 서로의 결핍을 사랑해주는 사이라고 생각해. 나는 너의 결핍을, 너는 나의 결핍을. 그러니까 나는 지금, 행복이 다녀간 자리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지 않을까. 어쩌면 행복이 지금 막 다녀간 자리에서 우리는 매 순간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제 너를 만난 오늘처럼 말이야.




이번 크리스마스엔 내가 네게 노래를 선물할게. 그때 그 시절에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들. 꿈을 끝내주게 높이 매달아놓아서 모든 게 눈이 시리듯 시리던 시절들에 듣던 노래들. 내용은 없이 형식만 채워가는 지금의 꿈하고는 차원이 다른 꿈이 담겼던 그 시절들의 노래들을. 그때 우린 정말 바보였지만, 나란히 앉아 같은 노래만 들어도 우주 한복판으로 진출한 듯 든든했지. 후회 같은 것, 체념 같은 것을 발가락으로 튕기며 유희했지. 꿈을 신발처럼 신고 있어서 참으로 씩씩했지. 내가 보낼 노래들이 타임머신이 되어, 가난했지만 높았던 시절로 너를 데려가주었으면 해.
나는 알고 있어. 살던 대로 계속 살아만 가도 충분히 훌륭한 너이지만, 엉뚱하고도 먼 꿈이 계속계속 너에게 찾아오고 있다는 거. 언젠가 우리가 또다시 만날 때엔 꿈에 대해서 사춘기처럼 얘기를 나누었으면 해. 예순이 되어도, 일흔이 되어도 유희처럼 꿈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서로를 불러냈으면 해. 만날 때마다 우리, 꿈꾸던 대로 살라고 씩씩하게 서로 응원을 해주자. 아무리 뜬금없고 아무리 헤아릴 게 많아도. 그래서 씩씩한 뒷모습을 보이며 잘 가 인사하고 돌아서자.







2017년 8월 19일 시옷의 세계 - 김소연

세이노의 가르침1


내 딸들아, 이런 놈은 제발 만나지 말아라





물건을 잘 사야 잘 산다
1.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나가라.
2. 구매시점을 파악하라.
3. 가격구조를 파악하라.
4. 유통구조를 파악하라.
5. 판매자의 입장을 살펴라.
6. 현금을 지불하라.
7. 마켓팅 기법에 속지 말라.
8. 판매자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말아라.
9. 상품 내용을 파악하라.
10. 기본기능에 충실한 상품을 찾아라.
11. 평상시에 가격정보에 민감해라.
12. 협상해라

한가지 더: 내 아내는 백화점에서 식료품 등을 미끼 상품으로 원가이하 선착순 초특가 한정 세일 하는 곳에서는 줄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 상품들은, 절약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구입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접대를 받지 말라

수많은 물품들과 서비스를 팔아 보았지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나는 영업사원에게 할당량이란 것을 정해 준 적이 없으며 영업사원의 봉급을 판매량에 비례시켜 결정한 적도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이지 영업사원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 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나무는 잘려 넘어져 있을 때가 그 크기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법이다.





나는 평등주의가 싫다

태양과 달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을 비추어도 엎어놓은 항아리 속을 밝게 하지는 못한다. - 강태공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











세이노의 가르침2




부자로 살고 있는 지금도 내가 만의 하나 무슨 잘못 때문에 제산을 다 날리게 되어 빈털터리가 된다면(솔직히 그럴 리는 없다. 나는 비올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서너 개는 반드시 준비하기 때문이다) 즉시 나는 가족을 이끌고 제로 점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판자집일 수도 있고 남의 집 차고일 수도 있으며 쓰러져가는 무허가 비닐 하우스 일 수도 있다. 나의 아내는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망해버렸는데도 넥타이를 계속 걸치고 양복을 입고 다니면서 다단계 판매나 보험영업같은 것을 하며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내가 즉시 작업복을 입고 시장에서 노점이라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하데 믿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언제라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내가 말한다. 경재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 수준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가시적 결과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라.
훌륭한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 법이다. 당신 역시 당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수준이 스스로 흡족할 때 까지 그렇게 해라.
둘째, 쉬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여 보라.
육체 노동이 아닌 일에서 자꾸 쉬고 싶어지는 이유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문제는 그 시기가 당신이 생각하는 시간 보다 더 미래에 있다는 점이다.
넷째, 긴장감을 잃지 말아라.










대학 도서관들의 대출도서 목록에서 무협지나 환타지 소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면접기법은 학원에서 배우고 자기 소개서는 대행업소에서 맡기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학연, 지연, 혈연이 있어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농경시대에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형성에 있었고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스승" 이었다.







법칙 5. 햄버거 뒤집는 일을 한다고 해서 네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선조들은 그런 일을 다르게 불렀다. 기회라고 말이다. 그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주말내내 커트 코베인이 (왜 죽었는지) 모여서 떠들어대는 것을 더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법칙 7. (부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너희 부모의 삶이 지금처럼 무미건조하게 된 것은 너희가 태어나고나서부터 였다. 너희 키우느라 돈벌고 너희들 방 청소 해주고 너희들의 허황된 개꿈을 들어주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그나저나, 너희들 말이다, 흡혈기생충 같은 기성세대로부터 열대림을 보호하여야 한다고 설치기 전에 먼저 너희 침대방 옷장(부터 청소하고) 이부터 먼저 잡아라.






경영자의 역할(하버드 경영대학 민츠버그 교수)
첫째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대리인
둘째 정보를 취합하고 분배하는 통로자
셋째 자원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자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다시 어제였다. 조그마한 차이도 없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내가 분노하여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는 혐오스러운 나의 삶이 너무나도 한심하였고 끝내는 저주스러웠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분노하였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혐오감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5월의 찬란한 햇살 밑에서 향긋한 꽃내음을 그대로 들이 마시며 어깨를 펴며 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내가 수집하는 것 중에 모형 자전거가 있다. 이미 5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신의 발이지만 앞 바퀴을 돌려 방향을 잡는 것은 당신의 손이며 눈이고 의지이며 정신이다. 당신의 발이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움직여는 주지만 정작 당신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깊이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작 당신의 눈은 당신 앞에 놓인 길을 바라 보지 않고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과 스포츠카만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열심히 페달을 밟고는 있지만 당신이 탄 자전거는 제 자리를 맴돌 뿐이다.






'미래의 결단',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미래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 역시 높은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사람, 끊임없이 혁신을 꾀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중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커피 하나도 제대로 타려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원두 커피나 그라운드 커피의 종류에 대하여 배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스턴트 커피도 어떻게 타는가에 따라 향이 다르다.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헹궈 내어 컵의 온도를 따뜻하게 한 뒤 물을 깨끗이 털어 내고 인스턴트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만 넣어 완전히 잘 갠 뒤 그 다음에 비로서 나머지 물을 채워 넣어야 향이 살아난다.





결코 오해하지 말아라. 평생을 일 중독자(workholic)로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내가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 "너희가 어제 밤 늦게까지 일하였다고 내가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아라.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사람 일수록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라. 너희는 방직기계 앞에 서서 실을 뽑아내는 노동자가 아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희가 날이 갈수록 일을 빨리 마치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평생 일하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일에 능숙해 져야 한다.






배고픈 사람이 먹었을 때만 맛있는 음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단 한명의 고객도 소홀히 대하지 말라.






고객이 왜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여야 충족시킬 수 있는지 만을 연구하여라.







절대로 "이득=판매가-원가" 가 아님을 명심해라. 이득은 "고객의 신뢰도 x 고객수" 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광고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입소문이라는 것을 믿어라.








세이노의 가르침 3


사람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스스로 일으켜 그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가치를 계속 증대시켜 나갈 때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인생은 이처럼 LIVING 속에서 LIFE를 추구하며 그 구분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 쇼윈도 앞에서 서성대지 말라. 남들이 불어넣은 이미지에 세뇌되고 타인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타인에게 보이고자 소유하려는 태도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세이노의 가르침 5

10분 이상 고민하지 말라

어니 J 젤린스키의‘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나는 고민거리를 오직 두 가지로 나눈다. 내가 걱정해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우산을 준비하면 된다.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은 당신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신에게 맡겨라. 그리고 오직 당신이 걱정해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라. 나는 낙관론자도 아니고 비관론자도 아니다. 그저 고민의 핵심을 정확히 스스로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노력하는 쪽이다. 당신에게 어떤 고민이 있다고 치자. 머리를 싸매고 며칠 누워 있으면서 걱정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조용한 바닷가로 가서 며칠을 쉬면 방법이 생각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된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건 그것을 종이에 적어보라. 틀림없이 서너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몇 줄 안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10분을 당신은 질질 고무줄처럼 늘려가면서 하루를 허비하고 한달을 죽이며 1년을 망쳐 버린다. 머리가 복잡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해결방안도 알고 있으면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직을 당한 친구가 있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몇 개월을 고민하고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민의 핵심은 간단하다. 취직이 안된다는 것이다. 왜 안될까? 경제가 어려워서? 천만의 말씀이다. 핑계를 외부에서 찾지말라. 채용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나온다. 채용할 만한 사람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앤드루 매터스는‘마음가는 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라. 고민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라. 고민하나 안하나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민은 10분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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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세이노(SayNo)
기획: 다음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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